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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갈등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는 법 본문

가치관

불안과 갈등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는 법

Canon_SKai 2024. 8. 1. 15:04

 
 
불안과 갈등은 나의 삶을 생존 경쟁으로 만들어버리는 
주된 원인이다.
불안은 삶을 경계하게 만들고, 큰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
교대 시간이 없는 사주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편해지고 싶다.
늘 긴장 속에 사는 삶이 일반적인 삶일리 없다.
모두가 긴장 속에서 사는 삶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일리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 이제 경계를 그만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위험요소를 발견하게 되고, 
'경계 안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라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이런 경험은 점차 모여, 
더 엄격한 보호막을 만들게 하고 불안을 미워하지만 계속 파고들게 만든다. 도움이 되니까.
원래 삶은 이렇고, 불안은 필요악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그렇게 우리는 원치도 않았지만 버릴 수도 없는 보호막을 입고 살아간다.

갈등은 누군가 이것을 건들때 생긴다.
보호막은 내가 원치도 않았는데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입고 있던 것인데,
누군가 그것이 필요없다고 말한다든지.
생각지도 않던 기준을 들고와서, 
내 보호막에 추가해야 한다고 말한다든지.
또는 상대가 보호막 없이 편히 있는 꼴을 보는 경우, 
우리는 갈등을 겪는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만하고 
편히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답부터 말하면 살아갈 수 있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불안이 나를 지배하는 빈도와 세기는 줄일 수 있고
삶의 대부분을 의도하고 원하는 만큼 살아갈 수 있다.

갓난 아이나 강아지를 보면
슬퍼하다가도 금새 잊고 이것저것 건드려 보며 
해맑게 세상을 바라본다.
해맑을 수 있는 이유가, 그들이 모든것을 가져서 인가?
아니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기준은 신경 안쓰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행동한다.
'오 이걸 만지면 어떤 느낌이 날까'
'그럼 만져보면 되겠다'
'으음~ 이런 느낌이구나'
그 이외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회적으로 이상한 행동인지 아닌지',
'나이에 맞는 발달과정을 거쳐야한다'는 의무감이라든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기준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우리는 그 기준을 그만 선택할 자유가 있다.
내가 선택한 기준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
그것 이외에는 중요치 않다.

예를 들면,
'나는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할래'라고 선택했다면,
‘숟가락, 젓가락의 위치, 음식을 먹는 순서, 공수 자세에서 어느 손이 위로 올라가야 하는지’ 등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기억할 수 있다면 기억하면 될 일 정도지, 
내게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내 기준 예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기준이 확실해 지면 다음과 같은 상황 변화가
가능해진다.

<Before>
??: "xx야, 국이 오른편에 와야지!"
나: '어?;; 아, 상식 없는 애처럼 보였으면 어떡하지 ,, 못 배운 애처럼 보이기 싫은데'
'근데, 쟤는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굳이 지적을해? 참나'


<After>
??: "xx야, 국이 오른편에 와야지!"
나: '오, 그런게 있었나? 저 친구는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나 보다 ~'
'음 그래도 난 왼쪽에 담을래 이건 내 꺼니까' 또는
'옹 쟤한테는 중요한거 같으니 해주지 뭐 ~
난 별로 상관없으니까'

Before도 After도 누군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After가 나를 덜 괴롭게 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Before에서는 내가 의도치 않게 선택한 것이 너무 많았다.
'난 상식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나는 공격당하고 싶지 않아'
'나는 저 친구에게 악의가 없었는데, 
날 공격해서 당황스러워' 등등
그러나 After에서는 내가 선택하고자 한 것만 선택했기에 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는 국그릇을 밥상에 놓겠어' 끝.
나머지 생각은 내 것이 아니기에 나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결국 선택권의 문제이다. 
우리는 늘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망각하고,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억압하고, 분노하고 불안해한다.

'저 친구가 나를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 맞다. 할 수 있는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생각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음 내가 저 친구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거처럼 생각하고 있잖아? 지금 기분은 불안하지만, 실은 내가 저 친구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내 감정뿐이지. 난 그럼 괜찮아지는 쪽을 택할래, 저 친구가 나를 안 좋아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나는 잘해주려 했으니 떳떳행~'
   
'이번에도 나를 증명하지 못하거나 무능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 당신이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을 무능하게 보는 사람 손해 아니겠는가. 냅두자.
'오 내가 유능해 보이기를 원하고 있구나, 근데 그렇게 보고 말고는 그 사람들의 선택사항이니까 내가 그걸 의도하지는 말자 나한테 좋지 않을 거 같아.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유능함의 기준을 확립하고 그것에 맞춰 행동하는 것뿐이네, 내가 생각하는 유능함은 뭐지? 일단 그것만 제대로 맞춰보지 뭐. 내가 모르는 기준을 어떻게 맞추누~ 내가 아는 기준만 맞추는 게 당연하지 껄껄'

'내가 이 기회를 놓치면 어떡하지, 이게 마지막 시기(사람)이면 어떡하지?'
 - 모든 기회는 마지막 기회이다. 다른 말로 하면 또 다른 마지막 기회가 찾아올 테니 걱정 마라.
 '아 이게 마지막 기회인 거 같아서 너무 불안해, 이거 쟁취 못해서 이렇게 이렇게 악순환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음 잠깐, 내가 벌어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고 있네? ㅋㅋ생각 안 할래, 뭐 마지막 기회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안되면 내 기회가 아니었나 보지, 내 마지막 기회들이 한 두 개였나 무슨 ㅋㅋ. 이것도 수많은 마지막 기회들 중 하나다.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면 돼, 그걸로 불안까지 가진 말자.'

우리는 어떤 생각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선택할 선택권이 있다.
똑같이, 상대는 본인의 감정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것은 나의 영역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 탐험적인 자세로 살 수 있다.
우리의 경험은 늘 왜곡되고, 대부분 그것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왜곡됨을 인지하자.
이런 감각은 원시시대부터 우리 DNA에 새겨진 진화의 흔적일 뿐이다.

실은, 생각이 매몰된 순간에 내게 선택권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선택권을 인지하는 것은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과 
같아서 연습할수록 튼튼한 코어근육이 되어
나의 생각이 매몰되는 것을 막아준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작은 경험부터 늘려가는 것이 좋다.
헬스를 할 때, 처음 자세가 잘 안 나와도 올바른 자세로 해야 타깃 근육이 발달하듯, 좋은 생각이 한 번에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계속 연습하는 것이 생각의 근육을 키운다.
거슬리는 느낌을 잘 찾아내고,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그것이 불안과 갈등으로부터 삶을 되찾는 방법이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다.
상황이 어쨌건 늘 당신 삶의 선택권은 당신에게 있다. 어떤 신념을 택할지, 어떤 감정을 택할지, 무엇이 중요하다고 여길지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편안하게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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